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무엇이 같고 다른가
“심판의 날 구원받으려면 선하게 살라”
야훼도 알라도 똑같은 가르침
예수는 기독교에선 신의 아들, 유대교, 이슬람교에선 선지자
유대교, 구약성경만 인정--- 기원전 6세기에 부활 사상 정립
기독교, 서기 90년 유대교서 갈라져 나와--- 삼위일체설 신봉
이슬람교“무함마드가 진정한 예언자--- 성전 순교자는 낙원행”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입력 2022.05.17.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05/17/IRIHFJ5ZHBDTNPR2PURLVNRS4U/
“심판의 날 구원받으려면 선하게 살라” 야훼도 알라도 똑같은 가르침
심판의 날 구원받으려면 선하게 살라 야훼도 알라도 똑같은 가르침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35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무엇이 같고 다른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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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유래한 한 뿌리의 종교들이다.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을 자기 종교의 최고 조상으로 섬긴다.
세 종교의 공통점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라는 점이다.
다만 유일신을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유대교에서는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처음 하느님께서 직접 모세에게 가르쳐 준 이름은 ‘나는 나다(I am what I am)’라는 의미의 ‘에헤으 아세르 에헤으’였다.
히브리 성경에는 신의 이름이 ‘YHWH’라는 4개의 자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다가 신의 이름 ‘YHWH’가 나오면 이를 발음하지 않고 대신 ‘아도나이’라 읽었다.
이는 ‘나의 주님’이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신의 이름을 발음하려 들지 않는다.
워낙 경건한 이름이라 인간이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YHWH’를 ‘야훼 혹은 여호와’라 부른다.
반면에 이슬람교는 하느님의 이름을 고유명사로 부르지 않고 ‘The God’이라는 뜻의 ‘알라’라 부른다.
모두 같은 분, 다른 이름이다.
쿠란에서는 알라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과 동일한 하느님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슬람은 신에 대해 말할 때 그 신이 아브라함의 하느님, 모세의 하느님, 예수의 하느님, 무함마드의 하느님이라고 한다.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이 최고 조상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창조주를 한울님이라고 불렀는데, 선교사들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때 이를 채택했다.
그 뒤 가톨릭은 ‘하느님’, 개신교는 ‘하나님’이라 부른다.
세 종교의 모태는 유대교다.
유대교는 기원전 2000년경 아브라함에서 시작해 기원전 13세기경 출애굽(출이집트) 때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과 율법을 받아 뼈대가 정립되었다.
그리고 기독교는 서기 90년경 얌니아 종교회의 이후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유대교에서 분리되었으며, 이슬람교는 기독교보다 약 600년 뒤 무함마드에 의해 생겨났다.
우리가 통상 구약성서로 알고 있는 유대교의 히브리 성서가 세 종교의 근본이다.
유대교는 구약만을 성서로 인정하는 반면 기독교는 구약과 함께 예수 이후의 복음서 ‘신약’을 성서로 믿는다.
이슬람교는 여기에 무함마드가 쓴 쿠란이 보태진다.
세 종교의 경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유대교는 ‘타라크(구약성서)와 탈무드’이며, 기독교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이슬람교는 ‘구약성서 가운데 쿠란과 상충하지 않는 토라(모세오경)와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서 그리고 쿠란’이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쿠란을 제외한 세 개는 후대에 일부 내용이 변질되었다고 보고 있다.
쿠란에서는 율법은 모세가, 복음은 예수가 선포했으되 진정한 예언자는 무함마드이고 그의 계시가 최종적이라 한다.
세 종교 모두 유일신에 의한 ‘창조, 종말, 최후의 심판, 영원한 내세’라는 종교관도 일치한다.
특히 죽은 다음의 부활을 강조하며, 최후의 심판 개념을 발전시켰다.
초기 유대교는 ‘야훼의 날’, 곧 ‘마지막 날’을 강조했다.
유대교에서 ‘마지막 날’이라는 용어는 메시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을 상징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부활과 구원에 관한 믿음이 있다.
하느님이 모든 민족을 심판하는 날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된다.
다만 유대교 개혁파는 이러한 메시아 사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유대교에 부활과 최후의 심판 사상이 명료하게 정립된 시기는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론 유수기(포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대인들은 죽으면 지하 깊숙이 있는 ‘스홀’에 간다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반(半)수면 상태에서 목적 없이 존재하는 음침한 곳이다.
훗날 메시아가 그들을 부활시켜줄 것이라는 어렴풋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당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바빌론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준 페르시아의 키루스(고레스) 대왕을 흠모하며 그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일부 사상을 받아들였다.
대표적인 게 인간의 도덕적 선행의무를 일깨운 조로아스터교의 이분법적인 ‘선과 악’ 사상이다.
곧 ‘천사와 악마, 천국과 지옥, 부활과 심판’ 등을 받아들였다.
조로아스터교는 예언자 자라투스트라가 강조한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하며 살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행동들이 악을 물리치는 무기가 된다고 보았다.
특히 선행이 가져다줄 심판과 부활을 강조했다.
죽은 뒤 3일을 무덤에서 지낸 뒤 4일째 계곡을 가로지르는 보응의 다리를 건너는데, 이때 살아있을 때 했던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만일 선행이 악행보다 많으면 영혼은 다리를 건너 하늘로 올라가지만, 악행이 많으면 다리가 좁아져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지혜의 주 ‘아후라 마즈다’가 악마들 우두머리인 ‘아흐리만’을 결국 굴복시킨 뒤, 모든 인간을 부활시키고 최후의 심판을 주재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기 때문이다.
이후 기독교는 최후의 심판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그리스도의 재림 때 최후의 심판이 있으며, 모든 인간이 하느님 앞에 서게 된다고 가르친다.
이슬람교에서도 최후의 심판 개념이 많이 확대되었다.
이슬람에서는 ‘부활의 날’ ‘심판의 날’이 세상의 마지막 이전에 선행된다.
심판의 날은 이슬람교의 5대 신앙 중 하나다.
부활의 날에 세상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살았던 모든 인간이 다시 살아나 알라 앞으로 나간다.
이때 인간들의 모든 행위를 기록한 책이 두 천사에 의해 하느님 앞에 제출되고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수록한 2권의 책에 실린 기록에 따라 낙원이나 지옥으로 간다.
만일 종교 전쟁(聖戰·Jihad)에서 죽은 순교자의 삶을 살았다면 영혼은 곧바로 낙원으로 간다.
그렇다면 세 종교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점은 ‘예수에 대한 관점’ 차이다.
기독교는 예수를 삼위일체설에 입각하여 하느님의 아들이자 신이라고 믿는다.
반면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예수를 단지 하느님이 보낸 선지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한다.
유대교는 예수를 유대교의 일파를 이끌다 순교한 선지자로 보고 있다.
이슬람교 “쿠란 이외 경전은 왜곡돼”
이슬람교는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존경한다.
실제로 이슬람교에서는 예수가 하느님의 허락으로 여러 기적을 보여줬다고 믿는다.
이슬람교는 “예수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요람에서 말을 했고, 죽은 자를 살렸으며, 흙으로 새를 빚어 숨결을 불어넣는 기적을 행했다.
예수는 ‘하느님 이외에는 숭배받을 존재가 없다’는 유일신 사상을 사람들에게 설파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심판의 날이 가까워지면 예수는 다시 재림한다고 했다.
이슬람교의 말세는 알라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다.
말세는 대말세와 소말세가 있는데 대말세의 징조는 연기가 온 세상을 덮을 것이며 짐승들과 사기꾼들이 출현하고, 예수가 재림하며 태양이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지는 등 징조가 있다.
소말세는 사회의 부정부패, 고리대금, 간음, 대로에서의 범죄 같은 것으로 그 징조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알라께서 쿠란과 하디쓰(예언자 언행록)를 통해 그들에게 알려주신 사실들이라고 한다.
이슬람교는 이렇게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인정하면서도 참선지자는 바로 무함마드라고 가르친다.
이슬람교는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삭이 적자(嫡子)가 아니라, 하갈이 낳은 맏아들 이스마엘이 적자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슬람교는 자신들이야말로 아브라함 종교를 계승했으며 이스마엘의 자손인 무함마드를 참선지자로 믿는다.
유대교·기독교 갈라진 까닭
로마와의 전쟁 막바지에 초기 기독교파 먼저 피란…
유대인들, 배신자로 인식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는 오랜 기간 사이좋게 예배를 같이 보았다. 유일신 하느님을 믿는 뿌리가 같았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 예루살렘 교회의 경우 유대교의 한 분파인 ‘나사렛파’로 존재했다.
그 무렵 로마와 전쟁 막바지에 예루살렘에서 최후의 일전이 있었다.
68년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기 시작하자 종말론 신앙 속에 살아온 초기 기독교 ‘나사렛 사람들’은 종말이 임박했음을 확신하고 요르단강 동편 펠라성으로 피란 갔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나사렛파를 배신자들로 여기며 신앙공동체를 함께할 수 없다고 보았다.
로마와의 전쟁 후유증으로 유대 민족의 절반이 멸절되어 거의 모든 종파가 와해되고 바리새파만이 남았다.
전쟁으로 제사장 계급이 전멸해 사제가 없어지자 이른바 랍비들이 주도하는 랍비적 유대교가 자리 잡았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나라가 로마제국에 의해 무참히 박살 난 이유 중 하나가 종파 간 교리 싸움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랍비들은 율법 논쟁은 용인하나 종파적 논쟁은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서기 90년 야브네(얌니아) 종교회의에서 구약성경을 확정 지으면서, 랍비 사무엘이 회당예배 때 바치는 18조 기도문 가운데 이단자들을 단죄하는 제12조에 ‘나사렛 사람들’을 덧붙였다.
그 뒤 나사렛 사람들, 곧 초기 기독교도들은 더 이상 유대교 회당예배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독자 종단으로 독립했다.
유대교엔 원죄 사상 없어 - - - "현재에 충실하지 않은 삶이 곧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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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원조는 유대교 토요일…
기독교는 로마가 일요일로 바꿔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한 뿌리서 나온 세 종교,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하)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입력 2022.06.14.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뿐 아니라 불교와 조로아스터교에서도
천사는 존재한다.
유대교에서 천사는 하느님이 불로 창조한 영적 존재들이다.
천사는 신과 인간의 중개자로 천사라는 말 자체가 히브리어로 ‘심부름꾼’을 뜻한다.
그들은 신의 뜻을 인간에게, 인간의 기원(祈願)을 신에게 전하는 존재다.
‘창세기’에서 천사는 여호와의 명령을 전달하며, 여호와를 대신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아브라함과 야곱을 지켜주기도 하며, ‘출애굽기’에서는 홍해를 건너는 유대인을 보호하기도 한다.
악마도 있다.
히브리어 단어 ‘사탄’은 구약에서 27번 나타난다.
일부 천사들은 감히 창조주처럼 그들 자신이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루시퍼를 비롯한 많은 천사가 하느님을 배반하여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로 나뉘게 되었다.
악한 천사가 바로 악마(사탄)이다.
천사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안겔로스’이다.
이 말에는 신에게서 파견된 사제·예언자라는 뜻이 있다.
기독교에서 천사는 지혜롭고 능력이 뛰어난 영(靈)으로 신에게 봉사하며 인간을 수호한다.
인간에게는 사람마다 수호천사가 있다.
천사는 그 사람이 인생의 최고 목표인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선행을 권하고 악을 피하게 해준다.
천사와 악마는 세 종교가 영적 존재로 소개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는 천사와 악마를 영적 존재로 소개한다.
천사는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심부름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악마(사탄)는 하느님을 배반한 천사라고 말한다.
세 종교는 “나만 옳고 너희는 틀렸다”며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갈등을 끝내고 포용하는 평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유대교에서 천사는 신의 심부름꾼
이슬람교의 천사 역시 인간을 섬기도록 만들어졌다.
알라가 인간을 창조하고 천사들에게 말하기를 “머리를 조아리고 인간을 경배하라.
내가 인간에게 나의 생기를 불어넣었음이라”고 했다.
곧 인간에게는 신성이 있다는 뜻이다.
세 종교의 안식일에도 차이가 있다.
곧 금요일은 이슬람교, 토요일은 유대교, 일요일은 기독교의 안식일이다.
달을 중심으로 하는 음력을 세는 유대인의 하루는 달이 보이는 일몰로부터 시작된다.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이렇게 첫날의 밤, 낮 하루가 지났다’라고 쓰여 있다.
하루를 일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다.
원래 세 종교의 안식일은 유대교의 안식일과 같은 토요일이었다.
기독교에서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뀐 사정은 이랬다.
예수 이후 로마제국에서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공존하며 함께 예배를 보는 등 모두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서기 132년 유대인 반란으로 인해 안식일 금지 칙령이 생겼다.
로마제국은 안식일을 지키는 기독교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박해를 가했다.
그러다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로마제국에 안식일 개념이 처음 도입되었다.
그는 유대력에 기초한 기독교의 주 7일 제도와 로마의 일곱 행성 신들의 이름을 혼합시켜 요일 이름을 정했다.
그리고 태양신의 날(Sunday)을 일주일의 첫째 날로 정해 휴일로 선포했다.
이를 통해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의 2대 종교, 곧 태양신 아폴로를 숭배하는 신도들과 기독교도들을 묶어 단일 종교로 합쳐보려는 야심찬 종교 정책을 시도했다.
그 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태양의 날인 일요일을 예수 부활절로 의결한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교회도 태양신의 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보도록 했다.
6세기경에 만들어진 이슬람교도 처음에는 유대교를 존중해 두 종교를 합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며 안식일을 지켰다.
그러다 유대인들이 무함마드의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지 않자 무함마드도 유대교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도 방향을 메카로 바꾸고 예배일도 금요일로 옮겼다.
세 종교의 또 다른 차이는 사제의 유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사제가 없다.
하느님과 평신도가 직접 소통하는 것이다.
유대교에 ‘랍비’가 있고 이슬람교에 ‘이맘’이 있으나 이들은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이다.
유대교 랍비의 경우, 율법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예배의 모범을 보일 뿐이다.
유대교에서는 랍비 이외의 평신도들도 강론한다.
유대교를 본떠 만든 이슬람교 역시 사제가 없다.
이슬람교는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떠한 중간 매체도 두지 않으며, 인간과 신의 직선적 관계를 중시한다.
이맘은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인데 젊은이, 무식자, 걸인 등 누구나 될 수 있다.
이맘 지위를 취득하기 위해 특별 교육 과정이나 안수식 같은 의식을 거치치 않아도 된다.
무슬림은 모두 신 앞에 평등하다.
신 앞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동등한 지위이다.
이처럼 이슬람은 절대적 평등주의를 내세운다.
반면 가톨릭은 하느님과 평신도 사이에 신부, 곧 사제가 있다.
사제는 ‘신과 인간의 중개인’을 의미한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마태복음 16:19)고 말했다.
베드로가 초대 교황으로 추앙받는 이유이다.
현재 가톨릭에서 고해성사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대교에 원래부터 사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세의 형 아론에서 시작된 제사장 혈통이 있었는데 중간에 없어졌다.
서기 70년경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사두개파를 멸족시켜 사제직 혈통이 없어져 버렸다.
그 뒤 평신도들이 유대교를 지켜왔다.
이후 종교개혁으로 로마가톨릭에서 개신교가 갈라져 나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루터가 주장한 ‘만인제사장설’은 누구나 하느님께 직접 예배하고 교통할 수 있다는 개신교 교리이다.
신약성서에서 사제는 예수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개신교는 성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신교 교회들은 신학 교육을 받은 전문인이 설교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평신도들에게 설교를 허락하지 않는다.
역사를 보면 정치건 사상이건 관용성을 보이며 서로를 포용하면 융성했고,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면 어김없이 쇠퇴했다.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살았던 시기는 융성의 시기였다.
이베리아반도의 코르도바와 톨레도는 세 종교가 공존했던 대표적 도시다.
지금도 톨레도에 가면 당시의 유대교 회당인 시너고그와 가톨릭 성당, 이슬람 모스크를 함께 볼 수 있다.
절대적 진리를 강조하는 근본주의(교조주의)가 발흥하여 “나만 옳고 너희는 틀렸다”며 ‘개종 아니면 목숨’을 강요한 사회는 쇠퇴했다. 12세기 북부 아프리카에서 발흥해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한 이슬람 근본주의, 11~13세기 가톨릭 교황이 주도했던 십자군 전쟁이 그랬다.
높은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하느님께 가는 길도 이와 같지 않을까?
틀린 길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길이다.
종교마다 올바르게 사는 길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이를 유대교에서는 ‘율법’, 기독교에서는 ‘복음’, 이슬람교에서는 ‘쿠란’, 불교에서는 ‘다르마’, 힌두교에서는 ‘요가’, 도교에서는 ‘도’라 부른다.
서로 다름 이해하고 포용해야 평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신론자인 한 언론인이 ‘신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신이 용서할지’를 물었을 때,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고 답했다.
교황조차 하느님의 자비는 무신론자에게도 베풀어진다고 답한 것이다.
하물며 하느님을 믿는 종교인들에게야 말해 무엇하랴.
이제 세 종교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의 관용성을 보여야 한다.
서로 간의 반목과 대립을 끝내고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를 모색해야 한다.
[같은 듯 다른 십계명]
“우상숭배 말라” 조항 논란…
가톨릭은 십계명서 삭제, 개신교는 모세 원본 유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은 하나다.
모세 율법의 핵심이다.
그러나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는 십계명이 약간씩 다르다.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의 십계명이 다르다.
왜 그럴까?
1세기경 유대인 철학자 팔론이 정리한 모세 십계명에서 제2항은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였다.
그런데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 사이에 우상숭배 논란이 일어 5세기에 성 어거스틴과 몇몇 가톨릭 교부들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제2항을 아예 삭제했다.
이렇게 고치고 나니 10계명이 9계명으로 줄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소유 중 아무것도 탐내서는 안 된다’는 제10항의 내용을 임의로 둘로 쪼개어 10계명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게 가톨릭의 십계명이다.
반면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다시 원래의 모세 십계명으로 회귀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톨릭과 개신교의 십계명이 약간 다르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06/14/LL2ZJ35NPBEOFERSTRE4CICSNE/
안식일 원조는 유대교 토요일… 기독교는 로마가 일요일로 바꿔
안식일 원조는 유대교 토요일 기독교는 로마가 일요일로 바꿔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37 한 뿌리서 나온 세 종교,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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